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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할리우드의 타란티노

2021. 3. 29.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포일러 (거의)없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헐리우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헐리우드에서 실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사건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이며
동시에 본인이 하고 싶은 잔인한 폭력묘사에 대해 정당한 변명으로 죄책감을 지운 영화다.

실제 일어난 끔찍한 역사에 대해 대체역사로 보여주는 복수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가 자살이 아닌 방식으로 죽음으로서 먼저 보여줬다.
그리고 [데쓰 프루프]에서 쓰레기같은 악당이 처참하게 응징당하는 장면으로 
끔찍한 폭력묘사가 부정적이거나 죄책감들지 않게 보여준 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이 뭉개지고 칼과 총으로 신체가 절단되며 불에 불타는 끔찍한 장면을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면 이상한 사람이 될 정도로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영화의 중후반까지 꾸준하게 빌드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영화도 참 좋아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아니라도 몇 개 생각나는게 있다면,
[라라랜드]와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꼽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영화 다 특정 장면을 위해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쌓아가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터트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라라랜드]에서는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영화 초반에 그냥 스쳐지나던 그 순간을
후반부에 다시 재연하면서 초반의 영상과 다른 장면이 나오는데,
그 순간이 [라라랜드]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이라 생각되며 영화를 보며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역시 가장 마지막 장면을 위해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며 빌드업하는데,
그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절박한 심정을 크게 공감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달리 행복은 찾기 힘든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런 영화들은 그 이유가 명확하게 보여서 좋다.
어떤 멋진 순간, 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PS.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블루레이에는 한국어 더빙이 들어있다.
이렇게 한국어 더빙이 들어간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타란티노는 정말 발페티쉬가 있는게 확실하다.
의심만 하다가 [데쓰 프루프]를 처음 볼 때 확신했던 장면이 있는데 잔인한 장면이라 올리기는 좀 그렇고.

[데쓰 프루프]의 한 장면

위 장면이 유명한지 타란티노의 발페티쉬 검색하니 나오는 이미지로 대신함.
아무튼 이후에도 늘 여성의 맨발을 크게 강조하는 씬이 자주 나온다. ㅎㅎㅎ

암튼 멋진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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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파수꾼

2021. 2. 16.

 

영화 파수꾼을 보고 마주한 내 청춘.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누가 물어보면 (누가 물어본 적 없었지만) 대답할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아마 영화 파수꾼도 [호밀밭의 파수꾼]과 상관이 있는 제목인 것 같다.

10대 시절의 나는 어땠는지 구체적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내가 힘들어하고 기뻐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선명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 때의 나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지금 보면 하찮아 보이는 것도 당시의 나는 큰 의미가 있었으며 인생의 큰 파도가 되기도 했고 기쁨이기도 했다.
모든게 서툴렀던 10대의 나는 상처주는 말을 쉽게 내뱉고, 나 역시 상처받기 쉬웠으며
항상 까불고 장난쳤지만 나름 모든게 진지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영화 파수꾼을 보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고등학생의 나를 마주했다.
모든 것이 미성숙했던 10대의 나와 주변의 관계에 대해.. 잊혀졌던 그 느낌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의 나는 내가 어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긴 나는 20대, 30대에도 내가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 비슷한 생각을 했더라도 그냥 껍데기만 그랬을 뿐, 스스로를 세상 다 아는 늙은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수룩한 것이 당연한 10대지만
내가 상처받고 상처주는 모든 일들이 세상의 전부였고, 그 작은 경계의 바깥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잊고 살았던 그 느낌을 영화 파수꾼을 통해서 다시 느꼈다.

내가 더 나이가 들기전에 봐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앞으로 40년이 지나도 이런 영화를 보면 10대 시절의 그 느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는 철없이 그것을 즐겼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 딴엔 힘들게 살면서 뭔가 해놓은 것도 딱히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청춘 (靑春)
파란 새싹이 피는 봄

나는 청춘에 대한 영화라면 명암(明暗)의 구별없이 좋아한다.
내가 청춘이던 시절의 나는 청춘이 다 지난 사람처럼 살았다.
참 아쉽지만
그게 나의 청춘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의 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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