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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픈 사람들이 있고 소망 있는 그곳에

2022. 6. 11.

 

무한궤도 노래중에 '소망은 그 어디에'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가사중에
만나고픈 사람들이 있고  소망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가사가 있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샀던 음반이 무한궤도 1집이었고
그 이후로 몇년을 무한궤도 1집 테이프만 들으며 살았는데

그 중에 저 노래의 가사..
만나고픈 사람이 있고.. 이부분이 항상 좋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은 곳이겠는가...

 

하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만나고 싶은 그 상태로 두는 것이 서로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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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Kim It's Alright It's All Good feat.윤미래 바비킴

2022. 6. 11.

https://youtu.be/Q7-molFlLrE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으니 참 좋네.

한때는 이 노래 때문에 

바비킴이랑 윤미래랑 사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 나오고 몇 년 지나서 윤미래는 타이거JK와 결혼해서 혼자 놀랬다.

 

아무튼 이 노래

오랜만에 들으니 너무 좋네.

 

 

2000년대 초반의

하리보처럼 말랑거리던 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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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2022. 1. 18.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참 부끄럽다.

그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많이 달랐고,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과 말을 했음이
그것을 겪은 주변의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물론 그건 잘 했지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모자라 보이는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냥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대단하게 성장했나..돌아보면 그것도 아니다.
더 시간이 지난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다시 부끄러워 할 것이다.
살아온 날을 돌아봤을 때 그랬는데, 지금이 뭐라고 달라졌겠는가.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내가 후회하는 것은 당시의 즉흥적인 대처에 대해서
지금 시간을 가지며 생각했을 때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실제로 그 당시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잘 모르겠다.

만약에 인생이 한 1,000,000년 정도 살 수 있다면
100년을 살았을 때와 1,000년이나 10.000년을 살았을 때가 다를까?
시간이 필요하다는건 절대적인 시간일까 상대적인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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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없이 손 씻기

2021. 12. 29.

애플워치를 착용하고 손을 씻을 때, 손을 오래 씻을 수 있도록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20초가 지나면 깨끗해졌다는 메시지가 뜬다.
처음 이 기능이 나왔을 때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았다.

이렇게 멋진 애니메이션과 함께 거품같은 서체 이미지를 기다리는 동안 손씻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멘트가 랜덤하게 나왔다.

이 기능이 대단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찮을 때도 많음)
이게 애플워치의 킬러기능도 아니지만 저렇게 텍스트 하나도 많이 신경쓴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저 기능이 업데이트 되고 몇 달 지났을까..
갑자기 텍스트가 아래와 같이 나왔다.

뭔가 오류가 있겠지 생각하며 재부팅도 해보고,
버그가 있나보다..하며 OS업데이트 되면 수정되겠지 했는데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손 씻기 완료 알림은 저렇게 텍스트만 나온다.

 

아...

 

왜 좋은 것이 없어졌을까?

거품이미지의 텍스트는 잘 보이지 않아서 없앴을까?
아니면 한글만 저렇게 출력되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는 아직도 거품텍스트로 잘 나오진 않을까?
이건 버그인데 고치지 않는 것일까, 아무도 이것에 대헤서 리포트 하지 않는가? 불만이 없는가?

손 씻을때 마다 저 건조한 텍스트를 보며 손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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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병

2020. 11. 17.

 

오늘의 이적을 있게 해준 노래, <달팽이>는 그때도 좋아했지만 지금 들어도 참 좋은 노래다.
나는 <달팽이>가 히트친 것은 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달팽이>의 가사는 뭔가 있어 보이게 시적이면서,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정도의 어려움이었고
듣기에 편하면서 많이 들어본 일반적인 대중가요 발라드와 구별되는 멜로디도 적당히 낯설면서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적당하게 어려운 듯하면서 너무 어렵지 않아서 적당히 마음에 드는 애매한 포지션의 음악이나 영화, 소설은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허영심을 자극하여,
그것을 소비하는 것으로도 스스로 문화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인 듯 착각하게 만들어 만족감을 주었다.
음악으로는 <달팽이>가 그랬고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타락천사>등이 그랬으며
<상실의 시대>, <댄스댄스댄스>등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그랬다.
적당하게 어려우면서 과하지 않은 재미를 주면서 지적인 허영심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다이하드>, <투캅스>같은 영화나 <퇴마록>,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같은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보다

"왕가위 영화의 완성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이 있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 원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은 어쩌면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뜻일 수 있다"

정도의 대사를 읇어줘야 아, 뭔가 아는 사람이구나..했던 것이다.
비슷한 영화로는 <세가지 색 블루>나 <천국의 아이들>이 있고 (감독 이름을 외우면 더 좋음)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 작가나 폴 오스터 같은 작가가 있다.
이런 영화나 소설은 누구에게 추천해도 대부분 재미있게 소비하게 된다.

나는 지적인 혀영심을 채우는 즐거움은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요즘은 홍대병이라는 이름으로 놀림 받기도 하지만 절대 비꼬는 것이 아니라,
이런 허영심으로 본인이 즐겁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보고 전율을 느끼는 것이나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나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가 행복하다는 점에서 평등하게 같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에는 90년대 초중반이 그런 문화적인 허영심을 자극하는 컨텐츠가 많았던 기억으로 있지만
그 시절에 10대와 20대를 보낸 내 기억 때문일 것이다. 
진지한 담론으로 독자의 허영심을 채워준 <sub>, <KINO>같은 메이져 잡지와 
계간 <REVIEW>나 <팬진공> 같은 독립 잡지를 기억하며,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홍익미대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 같았던- 그 외 많은 독립 잡지들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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