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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사 - 1

2020. 8. 5.

1.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어린 학생이 가요를 듣고 부른다는 것은 마치 술이나 담배처럼 아이들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때는 가끔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부를 때가 있는데, 동요나 만화주제곡이 아닌 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5학년 때, 모든것이 달라졌다.
이유는 기억 안나지만 선생님이 우리반 여자아이에게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라고 시켰고
그 아이는 앞에 나와서 이정석의 ‘사랑하기에’를 불렀다.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는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사랑한다면 왜 헤어져야해.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그러고보니 우리는 TV를 자주 보고 있었고 뭘 들어도 바로 머릿속에 쏙 들어가던 나이였기에
어지간히 유행하는 가요는 대부분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나도 평소 음악을 듣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저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지, 어떻게 부르는지는 알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뭔지, 헤어지는 것이 뭔지, 연애의 개념도 몰랐지만, 새삼 저 노래의 멜로디가 너무 좋았다.
그때가 1987년이었다. 민주화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2.
나는 초량동의 비잔틴 미술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국민학생이 다니는 일반적인 미술학원이 아니라 입시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이었고
미대를 다니는 대학생 강사에게 석고상 뎃생과 수채화를 배웠다.
시위가 한참이던 여름의 비잔틴 미술학원은 미대생이 판화로 만드는 프로파간다 찌라시를 찍는 곳이었다.
깃발을 들고 주먹을 들고 있는 학생들의 그림을 판화로 찍어내던 곳.
그리고 강사 선생님들이 점점 미술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혼자 나와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비잔틴 미술학원은 강사는 없어도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나오지 않게 되었던 미대 형님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던 것일까?)
그곳은 작은 카세트플레이어로 항상 이문세 3집과 4집이 항상 플레이되고 있었다.
다른 노래는 없었고 계속 이문세 노래만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문세 노래를 다 따라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가수는 이문세였다.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걸..”


3.
이렇게 1과 2의 이유로 가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만 그랬던게 아니었는지 6학년이 되었을 때는 대부분의 국민학생들이 가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원래 국민학생들도 다 가요를 듣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다가 알게되면서 동참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문세는 5집이 나왔고 나는 ‘붉은노을’을 흥얼거리며 국민학교를 다녔다.

1988년 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악테이프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집 앞 상가의 비디오가게 한구석에서 음악테이프를 팔았는데, 매일 거기 들러서 30분씩 테이프를 고르면서 고민하며 돈을 모았다.
가요 테이프 가격은 2800원 이었는데 이문세 5집은 3500원으로 올라서 논란이 있었다.
나는 3000원을 모아서 처음으로 살 테이프를 한달도 넘게 골랐는데 후보를 추리고 또 추렸다.
내 첫 테이프 구입의 영광을 가져갈 아티스트 후보.

하나는 소방차에서 솔로로 데뷔앨범을 낸 이상원의 앨범이었다.
이상원의 탄생이라는 곡이 인기였는데 나는 그 노래를 좋아했다.

“탄생! 우리는 젊음으로, 탄생! 우리는 희망으로, 탄생! 우리는 사랑으로, 여기! 새롭게 태어났네! 이대로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나머지 후보는 대망의 무한궤도 앨범이었다.
무한궤도는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에 빛나는 ‘그대에게’는 듣는 순간 1988년의 내 머리를 날려 버렸다.
아마 누구나 다 그랬을 것 같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키보드 전주는 정말 대단했다.
강변가요제의 담다디도 대단했지만 대학가요제의 그대에게는 충격적으로 좋았다.
그 무한궤도가 데뷔앨범이 나왔는데, 그 앨범의 트랙리스트에는 '그대에게'가 없었다.
그것이 실망스러웠지만 무한궤도는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무한의 궤도라니... 분명 좋은 노래가 많을 것 같았다.

이상원과 무한궤도. 나는 두 앨범을 두고 깊이 고민했으며
나는 무한궤도의 테이프를 2800원에 사서 집에 들어왔다.
내 인생의 가장 잘한 구매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이 선택이다.


1989년 1년 내내 나는 이 테이프 하나만 들었다. 다른 테이프 살 여력도 없었지만 무한궤도는 정말 미친듯이 좋았다.
모든 곡이 다 좋았고 대중적인 발라드부터 신나는 템포의 곡, 그리고 실험적인 곡까지 뭐하나 뺄게 없었다.

“흐르는 시간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무한궤도에서 신해철이 독립하고 나머지는 공일오비가 되면서 넥스트부터 윤종신, 유희열까지...
지금까지도 1989년 무한궤도에서 계보가 이어지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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