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 넛이 데뷔 25주년 기념으로 베스트 앨범을 새로 냈다.
기존에 있던 곡들을 그대로 짜깁기한 앨범은 아니라 다시 부르고 녹음한 앨범인데
8집까지 나온 정식앨범의 커버를 새로 그리기도 하고 꽤나 정성들여 만들었다.

밴드 [크라잉 넛]을 알게된 건 1996년이었나..
아워 네이션(Our Nation) 이라는 이름으로 옐로우 키친이라는 밴드와 만든 앨범부터 접했다.
(테이프로 A사이드는 크라잉 넛, B사이드는 옐로우 키친이었는데 옐로우키친의 음악도 참 좋다.)
암튼 거기 실려있던 ‘말달리자’가 메가히트 치면서 크라잉넛이 전국구로 유명해졌는데,
개인적으로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는 별로 안 좋아했다.
너무 자주 들어서 지겹다. 노래방에서도 정말 많이 불렀다.
당시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크라잉넛 공연도 여러번 갔고
심지어 무대위에 올라가 헤드뱅잉도 같이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제대로 놀았다는 뿌듯함을 느낄 정도로 신나는 공연이었다.
내가 크라잉넛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달리자 같은 정신없는 곡들도 좋지만
앨범의 가장 마지막 곡 혹은 뒷쪽에 있는, 이상하게 우울한 곡들이 참 좋아서였다.
그냥 우울한 곡이 아닌 이상하게 우울한 곡이라는 것이, 가사나 멜로디는 뭔가 우울한데
어딘가 모르게 그루브하고 마냥 어둡지만 않고 밝은 부분이 느껴지는 그런 우울함이다.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는데 어깨가 들썩거리는. 울어서 그런게 아니라 박자를 타고 있다고 할까.
오래전에 한국 인디밴드들이 Nirvana 트리뷰트 앨범을 냈는데 그 앨범 첫곡이 크라잉넛이 부른 곡이었다.
너바나 노래중에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세상 우울한 곡인데, 무슨 다죽자 스타일의 신나는 펑크로 불렀던 것을 생각해보면..
크라잉 넛의 25주년을 기념하여 내가 뽑은 그들의 베스트(우울한)곡은 아래와 같다.
곡의 순서는 발매순이다.
1. 검은새 (1집)
“오, 비가 오면 나는 좋아. 맑은 하늘 찢어버리고 / 나는 한마리의 검은새, 그대의 어깨위에 내려 앉아서 / 그댄 이미 한마리의 백조가 되어 있더군”
- 곡이 약 5분 30초 정도인데 후반 2분은 연주만 한다. 크라잉 넛 1집은 그야말로 90년대 펑크락밴드의 치기어린 데뷔앨범이었는데도 이런 곡이 있다.
2. 게릴라성 집중호우 (2집)
“또다른 한사람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네 / 또다른 두사람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네“
- 가사는 참 우울한데 따뜻한 연주와 술잔이 부딪히는 효과음이 너무 우울하게 만들지 않으며 웃음소리로 끝난다.
3. 양귀비 (3집)
“나의 지랄같은 염병할 인생에 / 삼라만상에 꼬이고 또 꼬였던 /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여름날 / 꽃이여 피거라, 꽃이여 피거라~!”
- 25주년 앨범에도 실려있어서 뺄까 했지만 좋아하는 노래라서 뺄 수가 없네.
4. 몰랐어 (3집)
“나 하나쯤은 빠져도 티나진 않을거야 / 내가 이럴줄은 내가 이럴 줄은..”
- 기타연주가 참 좋다. 배경에 깔리는 리듬기타도 좋은데 중간에 나오는 기타 솔로가 참 좋다. 연주만으로 눈물이 난다.
5. 개가 말하네 (4집)
“일어나 세상의 더러운 쓰레기는 니가 아냐 / 부족한 것은 없어 단지하나 그저 너에게 잘보이고 싶어 꼬리치네 “
- 25주년 앨범에도 있는데 ‘7년전에 시작되어’라는 가사가 ‘25년전에 시작되어’로 바뀌어있다. 크라잉넛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노래.
6. 귀뚜라미 별곡 (4집)
“창백한 작은 등에 돛을 달고 / 가지 말라고, 함께 가자고 / 귀뚜라미 춤추는 밤 / 이젠 나와 함께..”
-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사운드가 오른쪽과 왼쪽 스피커에 분리되어 들린다. 술을 부르는 노래.
7. 물 밑의 속삭임 (5집)
“저 별이 뜨고 내가 널 지켜줄게 / 메마른 발에 내가 널 끌어줄게 / 내 아련한 곳, 물 밑의 속삭임”
- 심수봉의 목소리가 정말 아름답다. 쿵짝짝 쿵짝짝 슬픈 뽕끼의 곡.
8. 튼튼이의 모험 (5집)
“고향의 꽃은 피었니 / 바다의 향기 좋았니 / 혼자서 비도 맞았니”
- 죽은 햄스터를 추모하는 곡이다.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는데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9. Gold Rush (6집)
“밤은 별을 삼킨채 머리위로 떨어져 / 높아져가는 바다위로 솟는 태양 / 아래 눈멀은 두 눈엔 떨어지는 눈물 / 뜨거운 하늘 두 손엔 녹아버린 보물”
- 6집도 역시 가장 마지막곡은 잔잔하고 우울한 곡이다. 하지만 6집은 전반적으로 곡들이 가장 좋아서 이 곡이 더 뛰어나게 들리진 않는다.
7집과 8집엔 이런 조용한 노래가 없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앨범을 추천한다면 2집과 6집을 추천한다. 둘 다 신나는 노래가 가득하고 처음 들어도 딱 좋은 곡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3집과 4집을 좋아한다. 앨범을 뒤돌아보면 매 앨범마다 히트곡들이 하나둘씩 있다는게 참 대단한 것 같다.
크라잉 넛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 좋다. 데뷔 50주년 앨범도 보고 싶다.